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추모글 남기기

정치 이야기 하나

삶 속 이야기/정치 2009/06/08 20:24

첫 번째 이야기,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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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승호 
뭔가 바꾸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필요도 있을 것 같은데
20대의 투표율이 현저히 낮습니다. 20대의 정치 무관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시민 
저는 젊은 유권자들이 무관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일을 안하고 있는 거죠. 관심을 표명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쪼다' 취급을 당해요.
'너 아직도 정치에 기대하냐?'는 식으로 바보 취급하는 분위기에서
누가 정치에 관심을 표명하겠어요.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냉소와 무관심은 좌절된 기대의 반영이라고 봅니다.
좌절된 기대를 살릴 수 있는 어떤 희망을 제시한다면
젊은이들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리라고 봐요.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2002. 9)

#2.
"대학생들의 정치 참여도가 낮은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각자의 인생인 것이며,
참여하지 않아 10년 후에 사회적 발언권을 갖지 못하면 그 또한 정당한 것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이후에 사회를 주도하게 되면 그 또한 정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참여하지 않으면 후에 발언권을 가질 수 없으니 알아서 하시기 바란다."

                                                                                            - 유시민 (2005. 5. 16)

#3.
유 의원이 개혁국민정당 의원 시절에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TV 토론에서 유 의원에게 참패한 후
그가 참석하는 토론회는 기피했다고 한다.
출연을 하려다가도 상대 패널이 유 의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내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내에서 토론의 달인으로 불리는 홍준표 의원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렇게 몇 번 토론회가 무산된 후
이 두 사람이 우연히 의원회관 엘리베이터에서 맞닥뜨리게 되었다고 한다.

보통은 얼굴을 붉히며 외면한 채 그 자리를 빨리 피할 수 있기를 기도할 텐데,
우리의 유 의원이 그럴 사람인가?
"홍 의원님, 왜 저와 토론 안 하시려고 하는 거예요?"
홍준표 의원, 순간 당황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대답이 "유 의원과는 격이 안 맞아서."
그로서는 자신이 2선 의원에 사실상 국정을 농단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실세라는 점에서
'어떻게 의원이 두 명밖에 안되는 정당의 0.25선 의원하고 상대하랴?'는 뜻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유 의원의 빛나는 순발력이 돋보였다.

유 의원은 능청스럽게도
"홍 의원님, 너무 겸손하신 거 아니에요? 아무리 제가 당 대표까지 지낸 거물이지만,
토론은 할 수 있어요. 용기를 내세요. 과공비례라고 지나친 겸손은 오히려 예의에 어긋납니다.
맘 편히 갖고 한번 해보세요." 하고 받아쳤다고 한다.
순간 엘리베이터 안의 모든 사람들이 뒤집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만약 여기서 그가 정색을 하고 '권위주의적인 것 아니냐'고 따지기라도 했다면,
오히려 모양새가 안 좋았을 것이다. 그는 유머와 여유로써 상대방을 멋지게 제압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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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승호
노무현 후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노 후보 지지 선언을 하면서 절필을 한 후,
개혁당을 창당하고 나서는 그에 대한 지지 발언을 아끼는 듯 했는데
이제는 말씀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노무현 후보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유시민
최소한 군림하는 권력자는 되지 않을 거라는 거죠.
인사에서도 친노나 자신의 이해 관계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빚진 것 빼고는 빚진 게 별로 없는 사람이에요.
빚 갚으려고 잘못을 저지를 일은 없는 거죠.

노무현은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대화하는 지도력은 갈등이 있는 곳에 타협을 가져오고,
분쟁과 증오가 있는 곳에 화해와 상호 이해를 가져오죠.
대화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책임총리제 얘기도 나오지만, 일정한 합리적 조건이 조성되면
국회로 하여금 총리를 선출하게 하는 식으로 권력을 운용할 겁니다.

소수파 대통령이니까 YS나 DJ식으로 야당에서 국회의원을 빼올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타협과 절충을 통해서 집권 연합ㅇ르 만들어 내려고 할 겁니다.
그것이 안 되면 야당을 찾아다니면서 부탁이나 로비를 하겠죠.
저는 이런 형태의 리더십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것이 다른 후보들과 다른 점이죠. 또한 지역 분열 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후보들과 다르고,
대북 정책에 대해서도 확실한 평화 정책을 취할 거라는 점이 다릅니다. (2002. 10. 25)

                                                                        - 지승호,『유시민을 만나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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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손글씨 공모전] 차근차근 준비해서 꼭 하자!

삶 속 이야기/손글씨 2009/05/1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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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자격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가 가능합니다. (연령, 국적 제한 없음)

◎ 응모작품 수
1인의 응모자가 최대 3개의 작품까지 접수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손글씨를 가진 응모자를 배려하여 최대 3작품까지 접수할 수 있으며
100일의 응모기간 동안 연습을 통해 가장 잘 쓴 손글씨 작품을 엄선하여 응모해주세요.

◎ 심사 기준
 
고유성 / 글꼴 개발 가능성 / 가독성 / 조형적 완성도 / 독창성

1. 고유성 : 오늘 날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손글씨인가?
2. 글꼴 개발 가능성 : 손글씨를 디지털 글꼴로 개발하기 위한 가능성이 충분한가?
3. 가독성 : 글꼴의 기능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손글씨가 쉽게 잘 읽히는가?
4. 조형적 완성도 : 한글의 아름다운 특징을 담아 조형적으로 뛰어난 완성도를 표현하였는가?
5. 독창성 : 응모자의 손글씨가 손맛을 담은 독창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손글씨 공모전 페이지 : http://hangeul.naver.com/hand.nhn
손글씨 공모전 블로그 : http://blog.naver.com/love_hang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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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은 김창완을 살지 (텐 매거진 인터뷰)

삶 속 이야기/음악 2008/12/08 04:26
김창완은 김창완을 살지

2008.12.02
글. 강명석 (two@10-magazine.com)
사진. 이원우 (four@10-magazine.com)
편집.
장경진 (three@10-magazine.com)
편집. 이지혜 (seven@10-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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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연기자 김창완을 경험한다는 건 초현실적인 현상이다.
“존재 자체가 SF적인” MTB 자전거를 타며 “불과 6~7kg의 자전거 위에 몇 십 kg의 거구가 타는 것은
마법의 양탄자를 타는 것”과 같다는 김창완의 소감은 그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니 벌써’의 김창완이 ‘나의 마음은 황무지’와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의 김창완이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TV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믿을 수 있나. 산울림의 김창완인데.
지금 이미 가요계의 전설 취급을 받는 1990년대의 뮤지션들이 존경을 바친 김창완인데,
장기하와 에픽하이마저 스스럼없이 영향을 미쳤음을 고백하는 그 밴드의 리더인데.
이미 음악의 만신전에 오른 지 한참 된 천재이자 거장이 매일 TV 브라운관의 한쪽 구석에서 인자한 웃음을 짓고 있다.

그가 만들어내는 모든 대체불가능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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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거탑>의 교활한 의사(왼쪽), <일지매>의 폭군까지 그는 의외의 표정들을 꺼내놓고 있다.

하지만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필요는 없다.
LP 한 면을 가득 채운 ‘나의 마음은 황무지’를 발표한 김창완에게
어린이 드라마에서 ‘산 할아버지’를 부르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 역만 시킨 것이 비극이었다면,
그 시간을 거쳐 대체 불가능한 어떤 연기자로 성장해버린 지금의 김창완은
그가 음악 대신 연기를 더 많이 한 뒤에도 ‘김창완’으로 살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는 어느 날 몸의 일부처럼 보이기까지 했던 안경을 벗고 MBC <하얀거탑>의 냉정하고 교활한 우용길을 연기했고,
SBS <일지매>에서 인자한 얼굴 뒤로 온갖 음모를 꾸미는 음험한 폭군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영화 <앤티크>에서는 본심을 짐작하기 어려운,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어떤 남자를 연기한다.

2008년 현재, 김창완은 KBS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시청률에 연연하는 중년의 드라마 CP와 <일지매>에서의 악역을,
현대극과 사극과 영화를 자유롭게 소화할 수 있는 연기자가 됐다. 그 말고도 연기력이 뛰어난 중견 연기자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김창완처럼 20여년을 선량한 얼굴로 살아오다 어느 날 그 외의 수많은 표정들을 보여주게 된 연기자는 드물다.
많은 배우들이 ‘누구 엄마’나 ‘사장님 전문 배우’로 굳어지기 시작할 때, 그는 점점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건 김창완이 소수의 음악 팬들을 제외하면 그를 착한 아저씨로만, 혹은 과거의 신화로만 바라봤던 지난 20여년의 시간을
견뎌냈기 때문이다. 산울림이 실질적으로 해체한 뒤 20여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산울림의 영향을 받은 뮤지션들이 등장했고,
산울림의 음악을 통해 그가 그저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드라마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에게 세월의 먼지를 털어냈던 첫 번째 작품이었던 MBC <떨리는 가슴>의 ‘바람’에서는 그의 노래인 ‘너의 의미’가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 김창완은 ‘바람’에서 착한 가장 대신 젊은 여성을 통해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던’ 과거를 되찾고 싶어 하는 남성을 연기했고, 그것은 그대로 김창완의 모습이기도 했다. 어른이되 그가 함께 살고 있는 어른과는 다른 감수성과 삶을 원하는 사람.

‘바람’을 연출한 이윤정 감독은 다시 그에게 MBC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여전히 동네 과부와 로맨틱한 감정을 나누는 남자를
연기토록 했고, 안판석 감독은 “산울림의 노래에서 이미 그런 것을 보여줬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우용길의 배역을 맡겼다.
산울림이 지금에도 어떤 사람들이 돌아볼 수 있는 음악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
김창완은 산울림을 통해 보여준 감성들을 연기로 옮길 수 있었다.

이미 전설이 된 뒤에도 멈추지 않았던 사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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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꽃을 꽂고 무대에 오르고(왼쪽), 통기타를 치고 그는 여전히 스물셋의 감성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김창완 밴드의 EP <The happiest>는 또 하나의 초현실적인 경험이다. 그가 처음으로 형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결성한 김창완 밴드를 통해 발표한 <The happiest>는 이미 역사에 기록된 거장이 누구에게나 박수 받고자 만든 완숙의 결과물이 아니다. <The happiest>는 50이 넘어 스릴러 연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김창완의 연기와 같다.

그는 20여년을 산울림의 그 감성으로 살았고, 그것을 연기로, 다시 김창완 밴드의 음악으로 드러냈다.
격렬한 펑크 록 사운드의 작은 파장 하나도 잘라내지 않은 <The happiest>의 사운드는 그 시절 산울림의 음악 이상으로 격렬하고, 그 사운드 속에서 밴드의 연주는 살아 숨쉰다. ‘Girl walking’에서 이 밴드가 스튜디오에서도 정말 라이브로 연주하고 있다는 생생한 느낌. 지금 이 순간 음악을 하고 있다는 외침이 그대로 들려오는 소리 같은 것. 김창완 밴드는 산울림을 회상하거나 재현하는 대신 산울림의 태도로 2008년에 음악을 하는 밴드의 록을 표현했다.

그건 과거와 현재가 충돌해 만들어낸 새로운 순간이다.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는 전설이 된 사람이
20여년 뒤에도 그대로 살아갈 때 무엇이 나올 수 있는지 보여주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결과물이다.

정제하지 않은 록 사운드 위로 주문같은 가사들이 반복된다. 열두 살은 열두 살의, 열여섯은 열여섯의 인생을 산다고.
회고와 현재 진행 중인 음악의 박동. 인생을 겪는 것 이상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는 그 기억의 과정부터 현재의 순간까지의 여정을 안내한다.
스물세 살 산울림의 감성이 쉰넷의 인생이 만나면서 뮤지션 김창완의 새로운 시기가 시작됐다.

김창완은 한 인터뷰에서 산울림에 대해 “화석 같은 존재가 됐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산울림을 음악사의 한 부분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화석 껍질에 갇혀 있던 그 순간에도 꾸준히 연기를 했고,
동생의 죽음에 대한 ‘분노’를 그대로 담아 새 밴드의 새 앨범을 냈다.
화석 껍질 속에 갇혀 있던 전설이 다시 살아 움직였고, 그의 몸 안에는 여전히 화석이 되기 전에 간직했던 피가 돌고 있다.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산다. 그리고 김창완은 김창완을 산다.
누구도 공유할 수 없지만, 지금 우리 앞에 존재하는 것만큼은 분명한 김창완을.

“머리를 비워내고 심장으로만 만든 노래”-1

10년 전 쯤 <이홍렬 쇼>에 산울림의 3형제가 출연했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때 김창완은 OX 퀴즈를 풀면서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다”라는 이홍렬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10년 후 김창완을 인터뷰하면서 김창완이 정말 외계인일지도 모른다고 믿게 됐다.

때론 독특한 비유를 섞어 쓰기도 하는 그의 말들은 때론 두 번 세 번 생각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꾸 머리에 맴돌아 사람의 행동을 조종했다. 그건 깊은 연륜의 어른이 주는 가르침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고민쯤은 훌쩍 뛰어넘은 외계인이 건네준 인생에 관한 암호 같은 것이었다.
이 인터뷰를 읽는 분들도 어느 한 부분에서 그런 암호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얼마 전 <MKMF>에서 에픽하이와 함께 출연했다.
무대 위에서 10대들의 시선을 받아보니 어땠나.

김창완
: 낯설었다. 보는 사람들도 현장에서는 처음에 몇 초간 굉장히 낯선 표정이더라.

귀마개가 인상적이었다.

김창완
: 코디네이터 아이디어였다. 키스 리처드보다 멋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 음악 소비자들인 10대에게 배척당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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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에픽하이와 함께해도, 귀마개를 해도 다 어울리는 것 같다. 불가사의하다.
10년 전에는 델리스파이스가 당신에게 존경을 보냈고, 이제는 에픽하이가 언급한다.

김창완 :
연말 공연 때는 후배들하고도 교류하고 싶은 생각도 드는데, 나는 지금 음악 소비자들인 10대에게 배척당하고 싶진 않았다. 그들에게 산울림을 알린다는 것도 나로서는 중차대한 문제니까. 이번에 낸 <The happiest>에는 그런 의미도 담겨있다. 산울림이 30년 넘게 사랑 받은 데는 ‘개구쟁이’나 ‘산 할아버지’가 사랑 받으면서 세월을 뛰어넘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부분이 컸다. <The happiest>도 새로운 세대가 산울림으로 건너갈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도록 하고 싶다.

하지만 <The happiest>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알려주기 위해 만든 것 같지는 않다. 당신은 이 앨범에서 단 한순간도 타협하지 않은 것 같다.

김창완 :
이 앨범은 머리를 비워내고 심장으로만 만든 노래다. 어느 프로그램에서 인디 밴드들의 음악을 심사하면서 거기 나온 뮤지션들한테도 말했다. 음악마저 백지처럼 창백하게 만드는 시대에 백지 위에 진한 먹으로 써내려 가는 이 사람들이 음악의 전사라고.

그런 에너지는 어디서 나온 건가.

김창완 :
이 앨범은 ‘Folklift’를 먼저 완성하고 나서 벌어진 순간적으로 만들었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 어느 날 밤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Folklift’의 첫 번째 행인 ‘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내 동생을 데려가 버렸네’를 썼다. 그 다음에 두 번째 행을 썼다.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지게차만 보면 쫓아가서 발길질을 하겠지’ 그러다 펑펑 울고 잠이 들었는데, 이상하게 슬픔을 많이 치유했다. 그러면서 급격한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어떤 변화였나.

김창완 : ‘
Folklift’를 완성하고 깨닫게 된 건, 우리는 모두 사랑의 상실 시대에 살고 있고, 우리는 사랑을, 행복을 찾는 사냥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거다. 행복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출발점이다.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의 주제가 그런 것처럼, 우리가 그 순간에 내 생의 완성을 하지 않으면 그건 의미가 없다. 그것이 내 생의 태도이기도 하고, 앨범에 담겨 있는 가장 큰 주제이기도 하다.

“겨우 아문 상처를 긁어내는 슬픈 노래는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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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앨범도 그렇게 녹음한 건가. <The happiest>의 사운드는
어떤 소리도 깎아내지 않고 라이브의 생생함을 살려냈다.

김창완 :
앨범에 참여한 일본 엔지니어 나카무라나, 연주하는 우리나 한 마음이었다. 지금 연주하는 이 분위기를 어떻게 스냅 샷처럼 포착하느냐. 다른 모든 건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어떻게 우리가 즐겁게, 행복하게 연주하는 순간을 잡아내느냐가 중요했다.

하지만 그런 날 것의 소리에 비해 ‘Folklift’의 멜로디는 평온하다.
혹시 처음에는 멜로디가 격했던 건 아니었나.

김창완 :
그렇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차분한 노래였다. 가사를 쓰고 나서 이게 어떤 곡으로 나올 수 있을까 하고 기다리는 순간, “아, 이거 좀 슬픈 노래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있었다. 슬프게 노래하고 싶지 않았다.

왜 그랬나.

김창완 :
상처를 건드리기 싫으니까. 겨우 아문 상처를 노래로 긁어내기 싫었다.

당신에게는 늘 그런 정서가 있다. 언제나 슬프면서도 그걸 직접 드러내지는 않는다.

김창완 :
내 인생의 책 중 하나가 <삶으로서의 은유>다. 나는 ‘무엇을 무엇이다’라고 규정 짓는 것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이게 습관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이번 앨범은 가사도, 멜로디도 반복적으로 읊조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반복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는 처음에는 밴드의 공연을 듣는 것 같다가, 가사가 반복되는 사이에 내 인생의 순간들을 하나씩 돌아보게 만드는 세상으로 데려다 놓는 것 같았다.

김창완 :
우리에게 ‘모두가 순간을 산다’라는 게 그 노래의 주제다. 나는 여자로서, 남자로서, 열두 살로서, 예순두 살로서 순간을 산다는 게 주제이기 때문에... 이렇게 지나온 세월을 보니 모든 것이 순간이구나. 그것은 겪고 싶지 않은 불행한 순간을 겪으면서 터득한 인생의 모습이다. 그래서 반복적인 읊조림들이 매 순간에 대한 감상을 만들어내는 모티브를 갖고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미처 머리로 헤아리기 전에 가슴에 파문이 인다고 할까? 그러길 바란다.
 
“나는 아직 스물네 살을 사는 것 같다”-2

삶을 회고하지 않고 계속 그 순간을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 <The happiest>는 산울림 초기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그대로 30년 동안 살아와서 만든 앨범 같기도 했다.

김창완 :
<The happiest>의 재킷을 내가 그렸다. 꿈에서 본 걸 그대로 그린 건데, 아기 침대에 어른 다섯 명이 앉아 있는 거였다. 언제 어른이 되었지 하는 그런 표정으로. 그래서 아이디어를 디자이너에게 주고, 이걸 해보라고 했다. 콘셉트는 그거다. “언제 어른이 되었지?”

어떻게 그런 감정을 유지할 수 있는 건가. 당신은 은둔자도 아니고, 매일 사람들과 부딪치는데. 보통 어른들은 그러면서 ‘사회화’란게 되지 않나.

김창완 :
그건.... 뭐랄까, 오래된 습관이기도 하고, 나의 정체성의 일부이기도 한데, 그건 항상 지금 현재의 나를 부정하는 거다. 지금 내 모습이 어떻다라고 하면, 항상 그 모습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한다. 그런 모습이 내 모든 작품에 담겨 있다. 어떤 경향에 함몰되는 삶이 싫었다. 지금도 싫고. 끝없는 자기 부정. 또 자기 스스로를 회의주의자로 바라보기.

“한 지점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 그런 지루함, 그런 붙박힘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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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살려면 피곤하지 않나. 늘 예민하고, 늘 생각을 많이 해야 할 수도 있는데.

김창완 :
예를 들어서... (기자의 손을 잡고, 얼굴을 감싼 뒤) 이런 경험을 했다고 하자. 내가 손을 잡으니까 따뜻하지 않나? 내가 이 나이 되도록 살아보니, 생각이라는 것은 이런 손만짐, 바라보기, 키스 같은 것에 비하면 너무나 단순하다. 우리가 누군가의 손을 잡기 위해 수억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고, 수많은 생각이 있었을까. 생각을 유지하는 건 쉽다. 삶에 비하면.

KBS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당신은 여전히 누군가를 짝사랑 하는 김국장에게 “몸은 나이 들어도 마음은 나이 들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산 증인 같은 놈아”라고 한다. 하지만 당신이야말로 그런 말을 들어야할 사람 같다. (웃음)

김창완 :
어느 방송에서 후배들이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연주하는 걸 들으면서 “이 노래가 발표된 지 30년이 넘었는데 이 노래는 아직도 스물네 살입니다”라고 말했었다. 노래는 주름이 생기지 않더라. 나는 아직 그 시절을 사는 것 같다.

하지만 당신은 오랜 시간동안 중년의 아저씨를 연기했다 (웃음)

김창완 :
산울림이 음악을 발표하던 때가 음악을 검열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주로 단골로 맡던 애 딸린 홀아비나 (웃음) 마음 좋은 아저씨를 연기할 때는 내 음악을 검열하던 시절처럼 안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왜 그런 배역을 연기한 건가.

김창완 :
그런 연기를 하면서 연기 훈련이 된 것도 사실이다. 혹자는 내가 작품을 고르는 걸로 알지만, 나는 전혀 작품을 고르지 않는다. 어떤 감독이 하자고 해도 다 한다. 시간이 허락하면 배역에 대해 물어보지도 않고, 어떤 감독이라도 상관없다. 무슨 역인지 모르겠지만, 나하고 같이 하고 싶어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그런 배역을 연기했던 건 일상성과 관계가 있다. 사람들은 흔히 일상을 지루함이나 권태로움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일상의 반복은 변화를 느끼게 하는 가장 거대한 밑그림이다. 그건 그랜드 캐년 투어 같은 거다. 그랜드 캐년 투어를 할 때는 경비행기로 할 수도 있고, 며칠씩 야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한 지점에서 하루 동안 일출부터 일몰까지 모두 경험해 보라고 한다. 한 지점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 그런 지루함, 그런 붙박힘이 중요하다. 오랫동안 반복되는 캐릭터에서 내 속 깊이 있는 일상성을 발견했고, 그랬기 때문에 나중에 성격있는 역할을 맡았을 때 차별화돼서 보이기 시작한 거다.

“독창성 있는 배역을 맡으면 음악 할 때와 같은 정열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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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이 꿈에서 본 광경을 그린 앨범 재킷.
그 붙박힘에서 MBC <떨리는 가슴>의 ‘바람’을 기점으로 당신의 연기는 변하기 시작했다. 어떤 변화의 순간이 있었나.

김창완 :
특별한 포인트는 없다. 일단 드라마에 캐스팅 된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니까. 감독이 나에게 배역을 주는 건 그 사람의 본능에 가까운 후각이기 때문에, 그들이 내 어떤 부분에서 냄새를 맡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바람’의 이윤정 감독은 당신의 음악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냄새를 맡았던 건 아닐까. ‘바람’에서는 당신의 음악이 매우 중요한 테마로 사용되기도 했다.

김창완 :
그럴 수 있다. 안판석 감독이 나한테 우용길 역을 맡기면서 그랬다. “나는 형이 이 역을 잘 할 거라고 믿어. 왜냐하면 형의 음악에서 이미 그런 것들을 보여줬으니까.”

그런데 지금 당신은 또 다시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 ‘바람’의 캐릭터가 ‘산울림의 김창완’을 전제로 둬야 할 수 있는 연기라면, MBC <하얀거탑>, SBS <일지매>, 영화 <앤티크>같은 작품들은 당신의 삶을 투영하는 대신 그 배역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김창완 :
맞다. 그 전에는 많은 관객들이 나의 일상에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 하고 있는 배역들은 상상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독창성. 그래서 이런 배역에 임할 때는 음악 작업 할 때와 같은 그런 정열이 솟는다.

연기가 더 재밌어졌을 것 같다. 전에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는데, 요즘엔 본인의 연기를 찾아단다는 느낌이 있다.

김창완 :
연기관이 많이 바뀌었다. 전에 자연스러운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런 연기를 하는 나를 보니 민망해졌다. 그 민망함을 어느 정도 조절하면서 또 다른 단계가 된 것 같다.

<앤티크>는 그런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원작에서도, 영화에서도 많은 설명이 없는 캐릭터인데, 어떻게 상상했나.

김창완 :
어떤 상상이라기보다는... 이건 비밀인데 (웃음) 언젠가 만드려고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을 <앤티크>에서 처음 보여준거다. 민규동 감독은 처음에는 내 캐릭터에 그렇게 접근하지는 않았는데, 내가 원하는 캐릭터에 대해 금방 이해를 해줬다.

“쉰 넷은 쉰 넷을 살지, 행복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 상상들이 끊임없이 가능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조금 전 사진 촬영을 할 때도 당신은 섬뜩할 정도로 매 순간마다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더라.

김창완 :
집중력이 좋다고 봐야지. 렌즈로 먹지를 태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떠다니는 많은 감상들 속에서 심금의 떨림을 포착해 내는 건 굉장히 예민하고, 집중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걸 생각이나 사고를 통해 포착하면 너무 둔해진다. 어떤 감성을 표현하겠다고 할 때는 고도의 집중을 한다.

아까 손을 잡는 것과 같은 건가. 뇌를 거치지 않고.

김창완 :
그렇다. 사고라는 건 삶을 인식할 때 너무 둔한 도구다. 흔히 작품을 머리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어리석은 짓이다. 나는 라면을 끓일 때도 나만의 레시피가 있다. 끓는 시간을 타임워치로 재고, 물은 550CC를 맞춘다. 달걀은 30초 전에 넣고. 생각을 거치지 않고 정해진 것들을 당연하게 하듯, 그렇게 사고를 거치지 않고 하는 거다.

그런 방식으로 연기를 하는 게 힘들진 않나. 게다가 당신은 매우 바쁜데.

김창완 :
음악이나 연기 때문에 생활의 많은 부분이 훼손당하고 있다. 자전거를 너무나 타고 싶은데, 그게 안타깝다. 자전거를 타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그런데 왜 모든 캐스팅을 거절하지 않고 계속 활동하나.

김창완 :
나는 늘 행동 과다증처럼 여러 일을 동시 다발로 한다. 그건 나의 탈출구다. 나는 그런 행동 과다가 필요하다. 내가 그 밖에 하는 일은 자는 일 뿐이다. 그리고 술 마시고. 술처럼 음악이나 연기가 나를 숨겨주는 방책이라고 생각한다. 술을 마시면서 달아나는 것과 일로 달아나는 건 감상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을 수 있다.

끊임없이 일을 하면서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음악에서 타협도 안하고, 언제 어른이 됐지 싶은 아이의 꿈을 꾼다. 그러면, 당신의 쉰넷은 대체 어떤 나이인 건가.

김창완 :
쉰 넷은 쉰 넷을 살지. 행복하다.

출처 : http://www.10-magazine.com/Articles/view.php?tsc=002004000&a_id=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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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차승민 2009/01/02 22:30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안녕하세요.. 예전에 싸이미니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사람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예전에 백업받았던 제 만화며 제 모든 사진들이 날아가는
    어처구니없는 -_- 일이 생겨서
    제 이름으로 검색하던 중에 님의 블로그까지 왔어요.
    죄송하지만 모으셨던 저의 만화 아직 갖고 계시다면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ㅠㅜ

    부탁드립니다.

    okdolmin@gmail.com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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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426~080427] Pia - Mother Nature Love

삶 속 이야기/일기 2008/07/06 10:18

PIA first club unplugged
Mother Nature Love [클럽 타(打)]

- 밴드 피아의 첫 번째 어쿠스틱 단독 공연
- 입대 이후 첫 번째 공연 관람 (2008.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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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밴드 피아 카페 - J#님

[2008. 4. 7. ~ 2008. 4. 8] EBS-SPACE 공감 피아, 어쿠스틱 코어(Core) 라이브 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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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천천히 정리하며…….

삶 속 이야기/일기 2007/01/3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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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은 '군대'라는 적당한 핑계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점점 더 빨리 내 곁에서 떠나가고 있다.
그러다 어느새 다시 찾아와 2년이란 시간 속에 날 가둬놓고 느릿느릿 걸어가겠지.

1월 6일 : The New Axis 공연 관람 (밴드 피아)
1월 12일 : 엄마 생신
1월 13일 : 제주도 여행 (~ 1월 15일)
1월 22일 : 뒤늦게 치과 다니기 시작, 곧바로 신경치료 (~ 2월 1일)
2월 3일 : 외할머니 뵙고 오기 (~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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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쉬고 있으면서도, 평일이나 휴일이나 같으면서도 난 왜 이렇게 더 쉬고 싶을까.
미리 다 쉬면 조금이라도 편해질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는 걸까.
하고 싶었던 것들도, 정리해야 할 것들도 다 쌓아둔 채 애써 외면하려는 마음이 날 뒤덮는다.
일단 마음껏 휴식을 마시자. 자유롭게 휴식을 삼키고 힘들 때마다 조금씩 꺼내
'나'에게 힘을 줄 수 있다면 쉬는 것도 괜찮겠지. 지금은 그래도 될 것 같다.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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